도쿄국립박물관 컬렉션 전시에서는 거의 매주 전시물을 교체하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최신의 전시교체 정보를 소개합니다.
※계속 전시물도 일부 포함됩니다.
노 <모미지가리>는 인간을 잡아먹는 요괴와 이를 퇴치하는 무장의 이야기입니다. 요괴는 단풍놀이를 즐기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인 ‘조로’로 위장합니다. 전반부의 조로는 고귀하고 젊은 여성의 사랑스러움을 나타낸 가면인 ‘고오모테’와 왕조풍 무늬의 화려한 의상인 ‘가라오리’를 착용한 모습이지만, 후반부에는 눈이 치켜 올라가고 입이 찢어진 ‘한냐’ 가면을 쓰고 붉은 머리카락을 헝크러뜨린 요괴의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이를 헤이안시대(794~1192) 말기의 무장 ‘다이라 노 고레모치’가 격투 끝에 퇴치해 냅니다.
일본의 민족의상인 ‘기모노’의 원형은 에도시대 사람들이 겉옷으로 입던 ‘고소데(소맷부리가 좁은 기모노)’입니다. 고소데는 본래 궁정 귀족이나 무사들이 입는 내의였는데, 15세기 무렵부터 무사의 일상 겉옷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에도시대로 접어든 17세기 이후에는 무사나 궁정 귀족뿐만 아니라 경제력을 지닌 서민 여성들도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고소데를 입었습니다. 또, 머리 모양에 어울리는 빗과 비녀 등의 액세서리를 곁들여 유행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유행의 변천은 당시의 풍속화나 우키요에의 미인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서민 남성은 줄무늬나 격자무늬, 자잘한 무늬 등으로 장식된 세련된 고소데를 입었습니다. 허리에 끼워 휴대하는 인롱이나 네쓰케 등 소품과 액세서리도 소재와 형태, 디자인을 고려해 신중하게 골랐습니다.
701년, 당나라의 법률을 본뜬 다이호 율령이 제정되며 일본에서는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율령 국가가 성립되었습니다. 그 후 710년에는 나라 분지 북쪽에 도읍 헤이조쿄가 건설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라 지역에 도읍을 두었던 약 70년 동안을 나라시대라고 부릅니다. 나라시대에는 도읍의 건설과 함께 각 지방에는 고쿠후(지방을 총괄하는 관청이 설치된 도시)가 조영되었으며, 관영 사찰이 건립되고 관영 도로가 정비되는 등 대규모 국가 사업이 차례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7세기 이후 견수사와 견당사로서 수나라, 당나라에 파견된 유학생들과 승려들이 가지고 돌아온 최신 제도와 사상, 종교, 기술, 문물 등은 정치와 문화의 혁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불교는 다방면에 걸쳐 사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천황과 유력 귀족을 중심으로 확산된 화장 문화입니다. 이 코너에서는 화장한 뼈를 담는 뼈항아리와 함께 무덤의 부장품, 고인이 세상을 떠난 연도와 업적을 새긴 묘지 등을 전시합니다.
또한 6세기 말에 전래된 기와에도 초점을 맞춥니다. 처음 기와는 주로 사찰의 지붕에 사용되었으며, 궁정과 관청 등에서도 기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스카시대(593~710)에 도읍 후지와라쿄(694~710)를 건설한 이후입니다. 741년, 쇼무 천황이 각 지방에 고쿠분지 절과 고쿠분니지 절을 건립하도록 명하자 도읍을 모방해 각지에서 기와 제작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규슈 지방부터 도호쿠 지방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된 개성적인 기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악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산악신앙은 나라시대 말기부터 헤이안시대에 걸쳐 산림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에 의해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고대 사회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룬 신앙 형태 중 하나로, 이후 일본 고유의 종교인 '슈겐도'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산악신앙의 대표적 영지로 유명한 나라현 오미네산 정상 및 도치기현 닛코 난타이산 정상의 출토품을 살펴봄으로써, 산악신앙에 사용된 물건들의 종류 및 사용법을 소개합니다.
가마쿠라시대 이후, 정치권력이 귀족에서 무사로 넘어가면서 사회와 문화는 무가의 생활이나 기호를 반영한 것이 되어 갔습니다. 이윽고 각지에서 성관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적 공간이 형성되어 갔습니다.
가마쿠라시대에 신불교가 일어나자 그 중 하나인 선종이 무가사회에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선종을 통해 보급된 차를 마시는 문화는 무사의 사교장으로서 중요시되고, 찻그릇을 비롯한 도구류가 무사의 위신을 과시하는 물품으로서 소중히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가라모노로 불렸던 중국제 도자기가 주목을 받게 되자 아이치현의 세토지방 등의 가마에서는 그것을 모방한 도자기 제작이 성행되었습니다. 이러한 도자기는 뼈항아리로도 이용되었습니다.
판비는 주로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석탑입니다. 가마쿠라시대 중엽에서 무로마치시대에 걸쳐 홋카이도에서 가고시마현까지 일본 전국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작례는 특히 간토지방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간토 지방의 판비의 대부분은 ‘무사시형 판비’로 불리는 형식으로, 간토의 무사가 크게 관여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는 권위의 상징인 수입도자기나 국산도자기를 이용한 뼈항아리, ‘무사시형 판비’를 비롯한 판비 등을 통해 중세 무가사회의 유물을 소개합니다
에도는 에도시대에 아시아 유수의 거대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당시의 최고 권력자였던 쇼군이 정무를 보고 거주하는 장소인 에도성을 중심으로, 다이묘(지방영주)와 하타모토(쇼군의 직속 무사), 고케닌(하타모토보다 하급의 무사) 등이 거주하는 무사 가문 저택을 비롯해, 절과 신사, 상가, 역참 마을 등으로 구분된 종합 도시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에도 번의 저택 터(다이묘 저택 터)에서 출토된 유물을 소개합니다. 가문의 문장이 들어간 기와, 에도성 출토로 여겨지는 진단구와 관련 자료, 우에노에서 출토된 물건 등, 모두 에도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또한, 에도시대의 통화였던 금화, 은화, 동화를 전시하여 당시 화폐의 유통 양상을 알기 쉽게 해설합니다.
일본 최초의 화폐인 '후혼센'을 비롯해 와도카이친, 고초주니센 등, 화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료를 전시합니다. 이를 통해 율령국가에서 화폐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기 쉽게 해설합니다.
고인의 성명,사망 연월일,사망 시의 연령,생전의 지위나 관직,업적 등을 적어 무덤에 넣은 것을 묘지라고 합니다 . 일본에 서는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에 걸쳐 화장이 보급되면서 도읍 주변의 기나이 지방 귀족층을 중심으로 묘지가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소조상이란 점토로 만든 상을 말합니다. 7세기 중엽에 그 제작 기술이 일본에 전래된 이래, 아스카시대(593~710) 후기부터 나라시대(710~794)에 걸쳐 활발히 만들어졌습니다. 출토된 소조상 파편을 통해 제작 기법을 알 수 있으며, 이미 사라져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절의 존재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일본에서 유약을 입혀 만든 도기에는 회유 도기, 삼채 도기, 녹유 도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도기는 교역을 통해 대륙과 한반도에서 전해진 청자나 백자 등의 외국산 도자에 큰 영향을 받아 발전했습니다.
경총은 불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경전을 묻은 무덤으로, 56억 7000만 년 후에 미륵보살이 나타나 다시 불교가 번영한다는 믿음과 관련을 지닙니다. 말법사상의 영향을 받아 헤이안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고대, 중세, 근세의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말법사상이 크게 반영된 고대의 경총에는 경전을 보관하는 경통과 그 외용기를 비롯해, 함께 묻힌 당시의 공예품이 마치 타임캡슐처럼 묻혀 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경통을 담는 용기와 각 시기의 전형적인 경총 출토 자료를 소개합니다.
호주 거울은 중국 송시대(960~1279)에 저장성 후저우(호주) 지방에서 생산된 거울로, 경총(경전을 묻은 무덤)에서 출토되는 거울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호주 거울의 뒷면에는 제작자와 제작지 등을 나타낸 명문이 들어가 있으며, 무늬는 없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호주 거울이 등장하기 이전인 당시대(618~907)의 양식을 계승한 일본 거울, 호주 거울의 영향을 받은 단순한 무늬의 일본 거울을 호주 거울과 함께 비교하며 살펴봅니다.
경전을 오랫동안 보호하고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경통에 넣어 지하에 묻은 무덤을 경총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종이에 필사한 경전을 넣지만, 점토판에 경전을 새긴 후 구운 와경, 활석 혹은 동판에 경문을 새긴 경전 등도 발견됩니다.
1957년 2월, 도쿄도 오시마(이즈오시마 섬) 앞바다 약 250m 지점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어부가 수심 20m 해저에서 에도시대의 금화인 고반을 우연히 건져 올렸습니다. 이후 그 근방에서 고반 103장, 이치부킨 63장 등 다량의 금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금화가 가라앉아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에도시대(1603~1868)에는 다양한 장난감들이 탄생했습니다. 점토로 만든 장난감인 멘우치는 그 대표적인 예로, 가문을 상징하는 무늬, 글자, 인물, 동물 등 여러 대상을 본떠 만들어졌으며, 지면에 구멍이나 구획을 만들어 던져 넣거나 표적에 가까이 대는 등 놀이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한편 흙인형에는 주술이나 신앙과 관련된 것 외에도, 운수나 명절, 교훈 등 당시의 유행과 풍속을 반영한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불교 미술을 중심으로 1세기 무렵부터 10세기 무렵까지 만들어진 서역의 미술을 소개합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실크로드가 발전함에 따라 서역은 오아시스 도시를 거점으로 동서문화가 오가는 요충지로서 번성했습니다. 불교 역시 이 지역을 거쳐 중국, 한반도, 일본으로 전해졌습니다. 지금도 절터와 궁전터, 집터 등 과거의 영광을 말해주는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서역 컬렉션은 20세기 초기에 이 지역을 답사했던 오타니 탐험대가 수집한 유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벽화, 조소, 직물, 도자기, 금속공예 등 미술품으로서도, 역사적 자료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중국 칠공예의 다양한 기법과 무늬를 소개합니다.
옻나무의 수액을 그릇이나 도구에 칠하여 만드는 칠공예는 중국대륙 외에도 일본 열도, 한반도, 동남아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만들어져, 지역마다 다양한 기법과 무늬가 발전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칠공예는 7000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칠공예에는 옻을 여러 번 칠한 후 무늬를 새겨넣는 조칠, 조가비를 가공하여 붙이는 나전, 문양을 새긴 후 금으로 메우는 쟁금, 안료가 들어간 옻칠로 무늬를 표현하고 윤곽을 가늘게 새기는 존성 등 다양한 장식 기법이 존재합니다. 사실적인 산수, 화조, 누각, 인물 그리고 넝쿨무늬가 더욱 추상적으로 표현된 굴륜문 등 각종 무늬로 이루어진 다양한 표현에도 주목할 만합니다. 옻칠만으로 아름답게 표현된 민무늬 칠기 또한 매력적입니다.
이 코너에서는 청시대(1644~1912)에 만들어진 옥기, 칠보, 유리공예, 대나무공예 등의 공예품을 소개합니다.
청시대에는 고도의 기교를 구사한 다양한 공예품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궁중에는 각종 공방이 설치되었고 궁정의 비호 아래 뛰어난 공예품이 다수 탄생했습니다. 또한, 미얀마에서 생산된 비취가 베이징에 전해지면서 세밀하게 가공된 옥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유리공예 역시 청시대에 특히 번성한 공예로 불투명한 색상의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문인의 서재를 꾸미는 문방구에서는 뛰어난 기교와 함께 높은 품격을 볼 수 있습니다.
치밀한 기법이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세련된 정취를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