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국립박물관 컬렉션 전시에서는 거의 매주 전시물을 교체하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최신의 전시교체 정보를 소개합니다.
※계속 전시물도 일부 포함됩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7~8세기, 일본의 불교가 중국 대륙 및 한반도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급속히 발전한 시기의 불상, 법구 및 경전을 소개합니다. 불교는 6세기 중반에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아스카시대(6~7세기)에는 사원이 건립되고 불상과 법구의 제작 및 경전 필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등 일본의 불교문화가 급속히 발전했습니다.
나라시대(8세기)에는 나라의 절 도다이지에서 거대한 노사나불(대불) 동상이 제작되었는데, 이는 고대 일본의 불교문화가 다다른 도달점을 보여줍니다.
가루차를 마시는 풍습은 12세기에 선종과 함께 중국에서 전해졌습니다. 이후 차를 마시는 장소에 어울리는 예법, 도구, 공간, 건축이 형성되어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종합적 예술문화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다도 문화를 다른 말로 ‘차노유’라고도 합니다.
다도 문화는 선종 사원을 넘어 무사들에게도 널리 퍼졌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최고 권력자인 아시카가 쇼군 가문이 중국에서 전해진 귀중한 미술품을 수집하였는데 이를 ‘가라모노’라고 합니다. 가라모노는 다실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고, 차를 마실 때 쓰이는 도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6세기 말, 센 노 리큐에 의해 다도 문화는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리큐는 인기가 높은 가라모노뿐만 아니라, 일상 속 간소한 도구들 중에서 본인의 취향에 어울리는 것을 골라 다도구로 사용한 ‘와비차’를 주도했습니다.
17세기 이후, 과거에 쇼군이나 무장들이 소유했던 유서 깊은 도구는 명물(일본어로 메이부쓰)로 불리며 시대를 거쳐 다도 문화와 함께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저명한 다인들의 귀중한 컬렉션을 중심으로, 계절에 어울리는 다도의 미술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매회 테마를 설정하여 다양한 역사 자료를 전시합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미술 작품과 고고 자료뿐만 아니라 역사와 민족에 관한 자료 및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이 설립된 1872년 당시 박물관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동서고금의 박물자료를 수집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적극적인 자세로 회화·지도, 고문서·고서, 탁본과 모사본, 사진 등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일대 컬렉션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일본의 정치, 사회, 문화, 교통, 경관 등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국가 체제는 메이지시대(1868~1912)에 크게 변화했습니다. 무사의 정점에 있는 쇼군이 정치의 실권을 쥐는 체제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 체제로 이동한 것입니다. 동시에 근대 국가로서 서양의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노력 속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모노즈쿠리(숙련된 기술자가 뛰어난 기술로 정교한 물건을 만드는 것)’와 서양 예술의 형식 간 차이에 따른 갈등도 있었습니다. 서양의 예술관에서, 생활 공간을 장식하는 용도인 병풍과 후스마에, 일상에서 사용되는 도자기와 금속공예, 칠공예, 염직 등은 ‘미술’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제작자들은 서양에서도 통할 수 있도록 이전까지의 가치관과 기술을 개혁하는 데에 분투했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해외의 박람회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전람회를 개최하고, 동시에 미술학교를 설립함으로써 ‘미술’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들은 일본도 서양 국가들에 뒤지지 않는 근대 국가임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메이지시대가 일본의 미술 제도가 정비되는 가운데 서양의 근대 사상을 받아들여 작가가 자신의 주장과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시대였다면, 이후의 다이쇼시대(1912~1926)와 쇼와시대(1926~1989)는 기술과 표현을 더욱 갈고닦은 시대였습니다. 여기서는 그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는 주로 6세기부터 8세기 무렵의 석불 및 금동불을 소개합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전해져 중국에서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2세기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5세기 중엽에서 8세기에 걸쳐 불교 신앙이 급속히 확산되어,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뿐만 아니라 여래와 보살, 불교의 여러 신들의 모습을 표현한 다양한 불상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재질도 금, 은, 동(청동), 철, 돌, 나무, 건칠, 점토, 종이 등으로 다양하며, 그중에서도 석불과 동(청동)에 금으로 도금을 한 금동불이 가장 많습니다.
중국 불상 황금기의 뛰어난 조형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코너에서는 미라를 중심으로 고대 이집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나일강 하류 지역에는 기원전 5000년 무렵부터 풍요로운 농경 목축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외적이 침입해 오는 일도 적어, 문명이 발생한 기원전 3150년 무렵부터 독자적인 건축물과 미술공예 등 이집트 고유의 문명이 오랜 기간에 걸쳐 번성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이집트 작품 수집은 1904년에 기증받은 미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집품으로는 신성문자(히에로글리프)가 새겨진 부조, 사자 머리를 한 여신인 세크메트상, 당시의 사상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목제 배와 인형 등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실물을 보시면 즐거움이 배가 될 것입니다.
명품 직물의 조각이라는 뜻의 ʻ메이부쓰기레’는 다도의 세계에서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었던 직물입니다. 중국과 인도 이란 등에서 제작된것이 일본으로 수입되어 족자의 장황이나 혹은 차 도구들을 싸는주머니의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찰이나 다인 등 전해진 유래에 따라애칭이 붙었습니다. 가가 마에다 가문에서는 제3대 당주였던 마에다도시쓰네 때부터 다양한 직물을 수집했습니다. 이번 특집 전시에서는마에다 가문에 전해져 온 메이부쓰기레를 선보이고 옛 직물을 감상하기위한 기초적인 포인트를 소개합니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중국의 무덤은 단순한 굴에서 벗어나 벽과 천장을 갖추게 되어 마치 지하의 저택과 같은 구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유족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을 지상에 설치한 무덤까지 나타났습니다. 특히 산둥성과 허난성 남부 등에서는 무덤과 사당의 건축자재로 견고한 돌이 선호되었고, 그 표면에는 다양한 주제의 그림이 새겨졌습니다. 이렇게 조각을 새긴 돌을 '화상석'이라고 하며 후한시대 기원후 2세기경까지 활발히 만들어졌습니다. 그 내용은 마차 행렬, 취사 장면 등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한 것을 비롯하여 신화나 선인의 세계까지 광범위합니다. 따라서 화상석의 석각화는 예술작품으로서도, 그리고 당시의 생활풍속과 사상을 나타내는 역사자료로서도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조선(1392-1910) 왕조의 문화를 보여주는 생활용품, 의상, 장신구 등을 소개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내에 널리 보급되고 그 가르침에 따르는 생활이 중요시되면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지배계층인 ‘양반’의 남성들은 서재(사랑방)를 사교장으로 삼아 가구와 문방구 등을 정연하게 배치했습니다. 한편 여성의 방(안방)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가구 등을 두었습니다. 세련된 미의식이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하여 신변의 생활용품에는 기능성과 간소한 아름다움이 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 커다란 특징입니다. 의상이나 가구, 식기, 문방구 등은 하나하나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생활공간 안에 놓임으로써 한층 더 빛나게 됩니다.
이 코너에서는 앙코르시대(9-13세기)의 석불을 중심으로 크메르의 조각을 소개합니다.
크메르 문화는 캄보디아에 있었던 크메르인 초기의 왕조인 부남(1-7세기)에서 1-2세기 무렵에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7세기 중반 이후에 진랍(550-802년)이 부남을 병합하여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인도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힌두교와 불교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9세기 초반에 앙코르 왕조가 시작되면서 크메르 문화는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이후 13세기 초반에 이르러 조각과 건축에 힌두교와 불교의 신 등을 표현하는 크메르의 독자적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크메르 조각은 1944년 동남아시아 문화 연구기관이었던 프랑스 국립극동연구원과의 교환을 통해 소장하게 된 것들이며,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훌륭한 작품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도는 아시아 직물의 고향입니다. 목면천, 비백무늬 천, 홀치기 염색, 모골직 등 다양한 직물 기법이 인도에서 아시아 각지로 퍼졌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목면천에 손으로 그리거나 목판날염으로 풀꽃이나 신화의 모티프 등을 염색한 사라사는 16~19세기에 걸쳐서 많이 수출되어 전 세계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대항해 시대에는 영국이나 네덜란드가 인도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유럽 사람들이 선호하는 사라사를 만들게 했습니다. 쇄국을 했던 일본에도 네덜란드의 배가 많은 사라사를 가지고 들어와 차도구를 싸는 보자기나 하오리(기모노 위에 입는 겉옷)의 안감, 기모노와 허리띠 등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히코네번(현재의 시가현)의 영주였던 이이 가문이 수집한 450장에 이르는 ‘히코네 사라사’는 에도시대 내내 일본에 수입된 다양한 디자인의 사라사를 보여줍니다.
특별전 <백만 석의 번주, 가가 마에다 가문>(2026년 4월 14일(화)~6월 7일(일))의 개최를 기념하여, 마에다 가문에서 전래된 <녹색 바탕 화훼 넝쿨무늬 금 친즈>와 <백색 바탕 작은 꽃과 넝쿨무늬 금 친즈>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관정번은 호류지 헌납 보물을 대표하는 명품입니다. 관정번과 함께 금동소번과 관정번의 제작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는 관정번 모조도 함께 전시합니다.
금동불이란 금으로 도금한 동제 불상을 말하며, 호류지 헌납 보물에 포함된 것은 모두 높이가 30∼40cm로 비교적 작고, 대부분은 호족들이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부분 7세기에 제작되었으며, 그중에는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쇼토쿠 태자나 권력자인 소가 가문과 인연이 깊은 도리불사의 공방에서 제작된 작품, 동자처럼 귀여운 불상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광배도 금동불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이지만, 불상과 한쌍이었던 것을 제외하고 따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압출불이란 불상 등을 부조한 틀에 얇은 동판을 놓고 그 위에서 망치나 정으로 두드려 모양을 낸 것으로, 하나의 틀을 이용해 양산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에 걸쳐 유행했고, 불당 내벽에 붙이거나 불감에 넣고 예배를 드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호류지 헌납 보물로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압출불 중의 대표작인 아미타삼존 및 승려 모습의 상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고대 압출불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입니다.
기악(일본어로 기가쿠)은 큰 가면을 쓰고 촌극을 곁들이면서 음악에 맞추어 야외를 줄지어 행진하는 불교 의식입니다. 7세기 전반에 한반도의 백제로부터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7, 8세기에 성행하였지만, 그 후 점차 쇠퇴하면서 결국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호류지 헌납 보물의 기악 가면 중에는 녹나무로 만들어진 가면이 19개,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가면이 9개, 건칠로 만들어진 것이 3개 등 3종류가 있습니다. 녹나무로 만들어진 것은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에, 나머지는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속 공예품은 불교 용구를 중심으로, 용도에 따라 공양구, 법구, 범음구 등으로 나뉩니다. 이들은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를 중심으로,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제작되거나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일본에서 제작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릇의 모양과 장식 등을 통해 고대 페르시아와 중국 당나라 사이에서 깊은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용머리 물병을 비롯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손잡이 향로, 736년에 고묘 황후가 호류지에 헌납한 것으로 알려진 2개의 거울, 쇼토쿠 태자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먹 받침대, 연적, 숟가락 등은 호류지 헌납 보물의 금속 공예품을 대표하는 명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