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의 하이라이트
구야 상인과 로쿠하라미쓰지의 창건
로쿠하라와 관련 깊은 인물들
구야 상인과 로쿠하라미쓰지의 창건
구야 상인은 헤이안시대에 서민과 함께 살아간 승려입니다. 951년, 교토에 역병이 유행했을 당시 구야 상인은 역병이 잦아들어 세상이 평온해지길 기원하며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조성과 대반야경의 필사를 발원하였습니다. 이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본존으로 하여 건립된 절이 사이코지로, 로쿠하라미쓰지의 전신에 해당합니다.
이 장에서는 서민부터 귀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이 떠받들었던 구야 상인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많은 이들에게 친근하게 여겨져 온 로쿠하라미쓰지의 역사를 되짚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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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문화재 구야 상인 입상
고쇼 가마쿠라시대 13세기
교토 로쿠하라미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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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야 상인에 대해서
구야 상인이 살았던 헤이안시대 중기는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역병의 유행, 빈번한 재해 발생 등으로 인해 사회 불안이 크게 확산된 시대였습니다. 구야 상인은 사람들이 느끼는 일상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병자와 죄인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설하였으며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드는 등,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다양한 구제 활동을 실천하였습니다.
구야 상인이 수도 헤이안쿄에서 시행한 가장 큰 사업은 귀족부터 민중에 이르는 폭넓은 계층에게 동참을 호소하여 완수해낸 대반야경 필사와 십일면관음보살 입상 등의 불상 조성입니다. 이 당시에 조성된 십일면관음보살 입상과 사천왕 입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로쿠하라미쓰지에 모셔져 사람들의 행복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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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문화재 사천왕 입상, 지국천
헤이안시대 10세기
교토 로쿠하라미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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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문화재 약사여래 좌상
헤이안시대 10세기
교토 로쿠하라미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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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하라와 관련 깊은 인물들
로쿠하라미쓰지는 오늘날 벤케이와 우시와카마루의 에피소드로 유명한 고조대교(지금의 마쓰바라교 부근) 근처에 자리합니다. 당시, 수도 헤이안쿄의 외곽에 위치했던 이 지역은 교토 사람들이 장송을 치르던 땅인 도리베노의 입구에 해당하여 ‘저승’과 ‘이승’의 경계로 여겨져 왔습니다. 헤이안시대 말기에는 무사 집안인 헤이시(다이라 가문)의 저택이 늘어서 있었고, 가마쿠라시대에는 막부의 지부 기관인 로쿠하라 탐제가 설치되어 각각의 시대에 존재감을 떨친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거듭된 고난을 이겨내면서 지켜온 사찰 보물을 통해, 독특한 입지가 만들어낸 신앙의 깊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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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문화재
가마쿠라시대 13세기
교토 로쿠하라미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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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문화재 지장보살 입상
헤이안시대 11세기
교토 로쿠하라미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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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문화재 염마왕 좌상
가마쿠라시대 13세기
교토 로쿠하라미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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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하라미쓰지
로쿠하라미쓰지
보타락산 보문원이라는 칭호를 지닌 로쿠하라미쓰지는 진언종 지산파의 사찰로, 일본 중서부에 위치한 서른 세 곳의 관음신앙 사찰을 일컫는 사이코쿠 33사찰의 제17번 순례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본존은 절을 개창한 구야 상인이 사람들에게 희사금을 모아 조성한 비불 국보 십일면관음 입상으로, 원칙적으로 12년에 한 번 진년(辰年)에만 불감의 문이 열립니다.
정월 초삼일에는 오부쿠차를 제공하고 8월의 명절 오봉 때는 ‘만등회’를 봉행하며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구야 용약 염불’(12월 13일~31일)을 올리는 등 연중 다채로운 전통 행사를 시행합니다.
로쿠하라미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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