このページの本文へ移動

본관(일본 갤러리)

본관(일본 갤러리) 본관(일본 갤러리) 2층에서는 '일본 미술의 흐름'을 조몬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시대순으로 전시합니다. 국보와 중요문화재 등 다양한 명품을 통해 미술사를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1층은 조각, 도자기, 도검 등 한 분야의 작품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분야별 전시와 기획 전시로 구성됩니다.
※수시로 전시 작품을 교체합니다.

 

2층 일본 미술의 흐름

하니와 춤추는 사람
하니와 춤추는 사람
일본 미술의 새벽 | 조몬·야요이·고훈시대
1실

일본 열도에서 사람이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 후기인 약 3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 후, 약 1만 년 전에 수렵·채집 생활을 기반으로 한 조몬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토기는 새끼줄 무늬(조몬)를 비롯해 다양한 무늬로 장식된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중기에는 호화로운 토기가 발달했습니다. 그 외에 흙인형·흙제품, 장신구, 칠기에도 훌륭한 조형이 잘 드러납니다.

기원전 5세기경에 시작된 야요이시대에는 대륙에서 농경문화가 전해지고, 금속기 사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야요이 토기는 간소하고 세련된 멋이 특징입니다. 대표적 금속기인 청동방울에는 독특한 문양과 원시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3세기경부터 7세기경에 걸친 고훈시대에는 대륙에서 새로운 선진 문화가 도입되고, 다양한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하지키(土師器)·스에키(須惠器)·하니와(埴輪)에서는 토기의 조형미를, 거울·장신구·무기·말갖춤에서는 금속공예와 유리공예의 정수를 볼 수 있습니다. 또, 다카마츠즈카 고분과 기토라 고분에서 볼 수 있듯이, 원시적인 회화와 구분되는 중국풍의 극채색 벽화가 등장했습니다.

사진:하니와 춤추는 사람

 
국보 고후쿠지 진단구   서화쌍봉팔화경
국보 고후쿠지 진단구   서화쌍봉팔화경
불교의 융성 | 아스카·나라시대
1실

6세기 중엽에는 백제에서 불교가 전해졌습니다. 이후 불교가 조정에까지 받아들여지자, 절 건립과 불상 제작이 성행했습니다. 577년, 588년에는 불교 사원과 불교 미술에 관한 전문 기술자들이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왔습니다. 일본 문화는 불교 수용과 더불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나라시대에는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 주조가 국가사업으로 추진되기에 이릅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불교가 전해진 지 얼마 안 된 아스카시대부터 나라시대까지의 불상과 경전, 사리 용기, 부처를 공양하는 데 쓰인 불구佛具, 사원 건립 시에 불교 융성을 기원하며 매장된 진단구(鎭壇具) 등 고대의 불교 미술품을 전시합니다.

사진:국보 고후쿠지 진단구   서화쌍봉팔화경

 
국보 화하유락도병풍
국보 화하유락도병풍
국보실
2실

이 전시실은 뛰어난 회화·서예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입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거나 혹은 기탁받은 국보 중에서 특별히 가려 뽑은 1점을 전시합니다.

국보는 중요문화재 중에서 ‘세계문화의 견지에서 가치가 높고, 국민의 보물로서 손색없는 것’(문화재보호법)을 국가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지정한 것입니다. 전체 중요문화재 중 국보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9%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엄한 사경寫經, 아름다운 불화(佛畵)와 장식경(裝飾經), 각종 두루마리 그림과 와카집(和歌集) 등 더없이 훌륭하고 귀중한 국보의 매력을 마음껏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사진:국보 화하유락도병풍

 
중요문화재 일자금륜상
중요문화재 일자금륜상
불교 미술 | 헤이안〜무로마치시대
3실

헤이안시대에는 불교가 일본 문화 속에 한층 더 깊이 침투합니다. 9세기 초, 법화경에 기반을 둔 천태종(天台宗)과 밀교에 기반을 둔 진언종(真言宗)의 유입으로 불교 미술의 내용은 더욱 다채로워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궁정 귀족을 중심으로 불교미술이 번성하여 특기할 만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가마쿠라시대에는 민중을 가르치는 신불교新(佛敎)와 무사를 중심으로 한 선종(禪宗)이 보급되어, 불교 수요층이 점차 귀족에서 무사와 민중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나아가, 부처를 본지本地(정체), 일본의 신들을 부처의 수적(垂迹, 화신)으로 여기는 ‘수적 사상’이 대두하였습니다. 이는 불교미술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로마치시대에는 민간 신앙과 불교의 결합이 확대되어 개성 있고 자유로운 조형이 등장했습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사원의 의식이나 법회에서 사용된 불구(佛具), 사원 내부를 장식했던 장엄구(莊嚴具), 본존으로 사용된 그림과 조각, 기원을 담아 사경(寫經)한 경전 등 헤이안시대부터 무로마치시대에 걸친 불교 미술품을 전시합니다.

사진:중요문화재 일자금륜상

 
중요문화재 세이코지 연기 두루마리 그림 상권
중요문화재 세이코지 연기 두루마리 그림 상권
궁정 미술 | 헤이안〜무로마치시대
3실

헤이안시대 초기의 궁정 문화는 중국문화의 모방에 가까웠지만, 헤이안시대 중기의 궁정 문화는 일본의 미의식을 바탕으로 꽃피웠습니다.

와카(和歌, 일본 고유 형식의 시), 서예,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등 문학 작품을 즐기는 것은 궁정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양이었습니다. 이를 화려한 장식 종이에 옮겨적거나(고필,古筆), 회화로 표현하고(모노가타리 두루마리 그림, 物語繪卷), 공예 작품을 제작하는 등 황실과 귀족은 다양한 방식으로 궁정 문화를 즐겼습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궁정 귀족의 글과 그림 등 문학 관련 작품을 비롯하여 병풍, 벼루함 등 생활용품을 함께 전시합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모해 온 궁정 미술의 세계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중요문화재 세이코지 연기 두루마리 그림 상권

 
칠언절구
칠언절구
선종과 수묵화 | 가마쿠라〜무로마치시대
3실

가마쿠라시대에는 선종(禅宗)과 더불어 남송부터 원 시대에 걸친 미술, 특히 수묵화라는 새로운 물결이 유입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산수화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수묵화였으며, 도석화(道釋畫, 도교와 불교의 인물을 그린 그림) 또한 빛과 깊이를 중시한 수묵산수화 양식을 채용했습니다. 이는 헤이안시대까지의 일본 회화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선종 사원은 수묵화 기법을 받아들여 예배, 감상의 대상이었던 회화를 제작했습니다. 무로마치시대에는 수묵화가 선종 사원의 범위를 넘어 일본에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이 시기에 활약한 화가로는 슈분(周文), 셋슈(雪舟), 셋손(雪村), 가노 모토노부(狩野元信)가 있습니다. 서예 분야에서는 '보쿠세키(墨跡)'라고 불리는 선승이 개성 넘치는 필적을 통해 독특한 작풍 세계를 수립하였습니다.

사진:칠언절구

 
찻잔 시노 「후리소데」
찻잔 시노 「후리소데」
다도의 미술
4실

무로마치시대(1392~1573)에 시작된 다도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중 하나로, 아즈치 모모야마시대(1573~1603)에 센노리큐(千利休)가 집대성했습니다.

다도 공간에서는 다양한 도구가 사용됩니다. 먼저, 다실을 장식하는 글과 그림, 꽃병입니다. 다음은, 차를 내는 데 쓰이는 물통, 가마, 차통, 찻숟가락, 찻잔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이세키(懐石)라고 불리는 식사에 사용된 그릇(무코즈케, 向付)입니다. 이 중에는 머나먼 중국과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도 있고, 오랜 옛날부터 소중히 이어져 내려온 것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 중 다도구가 된 것이 있는 반면, 다도를 위해 새롭게 빚어진 것도 있습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주인은 계절과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도구를 골랐습니다. 다실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았고, 손님과 주인은 오직 한 번뿐인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다도 문화가 낳은 미의 세계를 마음껏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찻잔 시노 「후리소데」

 
중요문화재 구로이토오도시니마이도구소쿠
중요문화재 구로이토오도시니마이도구소쿠
무사의 갑옷과 무기 | 헤이안〜에도시대
5실・6실

헤이안시대 말기부터 메이지유신까지 약 700년간, 무사가 정치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무사는 귀족 문화를 모범으로 하면서 불교와 서민의 문화를 받아들여 특유의 질박하고 힘찬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서민의 평상복이었던 히타타레(直垂)는 점차 무사의 예복으로 발전하여 막부의 출사복이 되었습니다. 에도시대에는 정식 출근복인 가미시모(裃)가 등장합니다. 일상에서는 고소데(小袖)나 도후쿠(胴服)를 착용하였고, 갑옷 위에는 무사의 취향이 잘 드러난 진바오리(陣羽織)를 걸쳤습니다.

무사의 도구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도검은 쇼군(将軍,막부의 수장)이나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에 대한 진상품으로써 높은 가치를 지녔습니다. 보통은 다치(太刀)와 고시가타나(腰刀), 가타나(刀)와 와키자시(脇指) 처럼 길고 짧은 칼을 하나씩 허리에 차고, 실내에서는 짧은 칼인 고시카타나 혹은 와키자시만 착용했습니다. 도검의 외장인 고시라에(拵)는 신분이나 복장, 시대의 유행과 함께 변화했습니다.

갑옷 종류도 기마병의 움직임에 적합한 요로이(鎧)부터 도마루(胴丸, 도보 무사가 사용하는 경량 갑옷)나 하라마키(腹巻, 도마루를 보다 간략화시킨 갑옷), 도세이구소쿠(当世具足, 모든 방어 기능을 갖춘 갑옷)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이러한 무기류는 신사 혹은 사원에 봉납 되거나 역사와 격식을 나타내는 도구로써 다이묘 가문에 전해져왔습니다. 또, 옻칠이나 금속 세공, 끈 묶기 등 여러 공예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사진:중요문화재 구로이토오도시니마이도구소쿠

 
중요문화재 아사마 산 병풍
중요문화재 아사마 산 병풍
병풍과 맹장지 그림 | 아즈치모모야마〜에도시대
7실

후스마(襖)란 방을 나누는 칸막이 창호입니다. 병풍은 시선이나 바람을 막고, 공간을 구획하기 위해 설치한 물건입니다. 장식을 목적으로 후스마나 건물 벽에 그린 그림을 장벽화(障壁画)라고 하며, 이동 가능한 병풍 그림을 더해 장병화(障屏画)라고 합니다. 오늘날 장병화는 감상용 그림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지만, 본래는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습니다.

권력의 상징과 공간의 장엄이라는 제작 의도는 건물이 사원이었는지 성곽이었는지에 따라, 또는 방의 목적과 시대의 생활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 금색 바탕의 화려한 채색 병풍과 수묵 병풍은 각각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유행 테마와 표현 기법도 달랐고, 디자인 고안 역시 유파에 따라 매우 달랐습니다. 이 외에도 장병화에는 계절의 변화와 풍부한 스토리 등 다양한 감상 포인트가 숨어있습니다.

사진:중요문화재 아사마 산 병풍

 

 
중요문화재 네즈미시노 할미새무늬 대접
중요문화재 네즈미시노 할미새무늬 대접
생활용품 | 아즈치모모야마〜에도시대
8실

아즈치 모모야마시대는 일본 역사상 보기 드물게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시대였습니다. 국내의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해외 교류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뒤이은 에도시대 또한 전쟁 없이 평화로운 시대가 250년간 지속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사와 상인 계층을 중심으로 한층 더 성숙한 일본 문화가 꽃피웠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도자기, 칠기, 금속 공예품 등 자신의 기호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물건을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활용품에는 기능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구한 아름다움과 정감,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전시품에서 느껴지는 계절 감각을 나침반 삼아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에 한 발짝 가까이 가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중요문화재 네즈미시노 할미새무늬 대접

 
솔나무, 매화나무, 한 마리의 학
솔나무, 매화나무, 한 마리의 학
서화의 전개 | 아즈치모모야마〜에도시대
8실

아즈치 모모야마시대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권력을 배경으로 회화 양식이 성립되었습니다. 가노 에이토쿠(狩野永徳)가 호화찬란한 모모야마 양식을 확립하고, 하세가와 도하쿠(長谷川等伯)와 가이호 유쇼(海北友松)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에이토쿠의 손자인 단유(探幽)는 가노파(狩野派)의 지위를 확고하게 구축했으며, 에도시대의 회화는 막부 말기까지 어용 화가로 군림한 가노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야마토에(やまと絵)를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다와라야 소타쓰(俵屋宗達), 가노파를 이탈해 재야에서 활약한 구스미 모리카게(久隅守景), 소타쓰의 장식성을 한층 발전시킨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일본의 문인화(남화,南画)를 집대성한 이케노 다이가(池大雅)와 요사 부손(与謝蕪村), 명료한 사생을 기반으로 인기를 끈 마루야마 오쿄(円山応挙), 개성적인 화풍을 자랑한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나가사와 로세쓰(長沢芦雪), 소가 쇼하쿠(曾我蕭白) 등 그야말로 백화요란의 시대였습니다.

서예 분야에서는 고노에 노부타다(近衛信尹), 혼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 쇼카도 쇼조(松花堂昭乗)<간에이(寛永)의 삼필三筆>가 새로운 서풍을 수립했고, 교토 만푸쿠지(万福寺)의 중국승 인겐(隠元), 모쿠안(木庵), 소쿠히(即非)<오바쿠(黄檗)의 삼필三筆>가 중국 서법을 들여와 에도시대 중기 이후 중국식 서체가 유행했습니다. 그 외에도 무장과 승려, 다인茶人의 성품을 반영한 다양한 필적이 남아있습니다.

사진:솔나무, 매화나무, 한 마리의 학

 
가라오리   갈색바탕 격자 국화가지무늬
가라오리   갈색바탕 격자 국화가지무늬
노와 가부키
9실

노(能)는 무로마치시대에 간아미(観阿弥), 세아미(世阿弥) 부자가 집대성한 가무극입니다. 귀신과 신, 여성 등 모든 역할을 남성이 연기했기 때문에 노 특유의 가면이 발달했습니다. 예를 들어, 젊고 풋풋한 여성을 나타낸 '고오모테(小面)', 아이를 잃은 중년 여성을 나타낸 '후카이(深井)'와 '샤쿠미(曲見)', 천상 세계에 사는 여성의 영롱함을 나타낸 '조온나(増女)', 질투에 휩싸인 여성을 나타낸 '한냐(般若)' 등 감정과 연령을 섬세하게 나누어 표현합니다. 노는 무사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서 연중행사에 동원되었고,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 가문은 가라오리(唐織), 아쓰이타(厚板), 긴란(金襴), 니시키(錦) 등 고급 직물의 호화찬란한 의상을 주문했습니다.

한편, 에도시대에는 이즈모노 오쿠니(出雲阿国)가 교토에서 선보인 가부키 춤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부키(歌舞伎)라는 새로운 예능이 발전했습니다. 가부키 또한 남성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데, 노와는 달리 가면을 쓰지 않고 화장으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합니다. 의상은 두툼한 자수로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디자인을 표현합니다. '가부쿠(かぶく、기발한 행색이라는 뜻이 있음)'라는 말에 알맞게 선명한 색채와 화려함이 눈길을 끕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노와 가부키를 중심으로, 무악舞楽이나 교겐(狂言)과 같은 일본 전통 예능의 가면과 의상을 전시합니다. 무대를 상상하며 관람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진:가라오리   갈색바탕 격자 국화가지무늬

 
가와시마 지부고로로 분한 3대 오타니 오니지
가와시마 지부고로로 분한 3대 오타니 오니지
우키요에와 의상 | 에도시대의 우키요에
10실

17세기 중엽,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시대 인물과 유행 풍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서민 소비층을 대상으로 미인과 유락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활발히 제작되었고, '우키요에(浮世絵)'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키요에는 유곽과 가부키를 주로 그렸지만, 꽃과 새를 비롯한 자연풍경이나 문학 작품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우키요에는 천이나 종이에 직접 그린 육필화와 목판으로 대량 제작된 판화로 나뉩니다. 판화는 다시, 제본된 판본과 낱장의 인쇄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낱장 인쇄물의 종류로는 연속된 그림으로 큰 화면을 구성한 연속물과 같은 테마의 시리즈를 모은 시리즈물 등이 있습니다. 초기의 판화는 먹을 사용한 '스미즈리에(墨摺絵)'였지만, 점점 붓이나 판으로 간단한 색을 더해 1765년에는 다양한 색판을 겹친 '니시키에(錦絵)'가 고안되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개성을 지닌 우키요에 화가들에 의해 많은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사진:가와시마 지부고로로 분한 3대 오타니 오니지

 
중요문화재 고소데 염색 린즈(綸子)바탕 작은 소나무와 꽃 사슴 단풍무늬
중요문화재 고소데 염색 린즈(綸子)바탕 작은 소나무와 꽃 사슴 단풍무늬
우키요에와 의상 | 에도시대의 의상
10실

현대의 기모노(着物)는 에도시대까지 고소데(小袖)라고 불렸습니다. 고소데가 모든 계층 사람들의 복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에도시대입니다. 특히 에도, 오사카, 교토 등 도시의 상인 계층 집안 여성들은 멋스러운 패션을 선보였습니다. 에도시대 초기에는 적색, 흑색, 백색으로 바탕을 염색하고, 자수나 금박으로 꽃과 새 또는 길상무늬를 표현한 디자인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한편, 다양한 무늬를 게재한 도안 견본 책이 간행되어 오늘날의 패션 잡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여성들은 이 책을 보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주문하여 개성과 멋을 즐겼습니다.

에도 막부가 사치를 제한하기 위해 자수와 전체 홀치기 염색을 금하자, 특수한 기법으로 회화적인 무늬를 표현하는 유젠염색(友禅染)이 유행했습니다. 또, 에도시대 후기에는 '이키(粋, 세련된 멋)'라는 미의식이 뿌리내려, 쥐색과 갈색, 줄무늬와 격자무늬 등 남성이 즐겨 입던 색과 무늬가 여성 패션 속으로 적극 수용되었습니다. 우키요에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복장에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납니다. 고소데, 빗, 비녀 등 의복과 장신구를 통해 에도시대의 패션 유행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중요문화재 고소데 염색 린즈(綸子)바탕 작은 소나무와 꽃 사슴 단풍무늬

 

2층 기획 전시

콜럼버스의 계란 오로라Ⅱ 부탁
콜럼버스의 계란 오로라Ⅱ 부탁
네쓰케 다카마도노미야 컬렉션
다카 마도 노미야 컬렉션 실

 

다카마도노미야 친왕 부부가 수집한 현대 네쓰케(허리춤 장식)를 전시합니다.

사진:콜럼버스의 계란 오로라Ⅱ 부탁

 
No image
No image
기획 전시
특별 1실 특별2실

'박물관에서 새해맞이 하기', '새롭게 지정된 국보・중요문화재', '새 소장품', '자녀와 함께하는 갤러리' 등 연례 특집 행사가 개최되는 곳입니다.

 

1층 장르별 전시

중요문화재 보살 입상
중요문화재 보살 입상
조각
11실

이곳에서는 아스카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의 조각을 전시합니다. 전시품 대부분은 사원에 놓여있던 불상과 초상 조각입니다. 일본의 불상은 인도와 중국, 한반도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중국의 새로운 작풍과 기법을 받아들여 일본화하는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불상은 조각 작품이자 신앙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조형을 통해 시대별 미의 기준을 알 수 있고, 외국의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대외 교류의 역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불상에는 사람들의 바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마쿠라시대의 아미타여래상 중에는 선 자세로 발을 내디디고 있는 불상이 있습니다. 사후 아미타가 사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고 싶다는 사람들의 기원에 응답하고자, 불사가 깊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불상을 감상함으로써 여러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과 박력 넘치는 매력을 즐기는 데 지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소중히 여겨져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천천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중요문화재 보살 입상

 
주교 마키에 벼룻집
주교 마키에 벼룻집
칠공예
12실

옻칠은 윤기가 있고 방수성이 뛰어나며, 열과 산알칼리에 견딜 정도로 견고한 천연 도료입니다. 일본에서는 오랜 옛날 조몬시대 전기부터 사용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완성도 높은 칠공예품이 만들어진 것은 아스카, 나라 시대 이후입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칠공예 장식 기법인 '마키에(蒔絵)'가 독자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마키에는 옻칠로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금속 가루를 뿌려서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나라시대에 시작되었으며, 헤이안시대에는 마키에 가루 제조법이 확립되면서 면밀한 문양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마쿠라시대에는 무늬를 도드라지게 하는 다카마키에(高蒔絵) 기법이 개발되어 마키에 특유의 입체적인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무로마치시대에는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여 여러 기법을 조합한 복잡한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아즈치 모모야마시대에는 마키에 수요가 증가하여 단순한 무늬가 유행했는데, 에도시대에 접어들어 다시 전통적이고 복잡한 마키에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 개성적인 제작 분위기가 고조되어 혼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나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오가와 하리쓰(小川破笠) 등 참신하고 독특한 마키에 작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사진:국보 주교 마키에 벼룻집

 
자유자재 용 장식품
자유자재 용 장식품
금속공예
13실

금속공예는 금속을 가공해 만든 공예품과 이를 가공하는 다양한 기법을 아울러 가리키는 말입니다. 금속은 닦을수록 광택이 나고 단단하며 빛을 반사합니다. 또, 두드리면 맑은 울림이 퍼지고 열을 잘 전달합니다. 오래전부터 금, 은, 동, 주석, 납, 철 등이 사용됐으며, 합금을 포함하면 각각 고유의 색과 질감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금속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특성을 살려 무기와 무구, 신앙 종교 용구, 생활 용구, 장식구, 주화 등 실로 다양한 물건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의 금속공예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현재까지 긴 시간 이어져 왔습니다. 중국과 한반도의 기술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하여, 자국 문화의 성숙과 함께 독자적인 방법을 고안하고 소화했습니다. 불교와 신도 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생산, 극단적인 기교에 치우치지 않은 우아한 표현, 사계절 경치와 전통적인 기하학무늬를 반영한 장식, 세세한 부분까지 미친 정성 등이 특색입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다채로운 금속공예품 중 신앙 종교 용구, 생활 용구, 장식구를 주로 소개합니다.

사진:자유자재 용 장식품

 
국보 다치
국보 다치
도검
13실

일본에서는 5세기 경 철제 도검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중국과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직도直刀가 헤이안시대 중기인 10세기까지 생산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도'라고 불리는 휜 칼 형태의 다치(太刀)는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도공은 교토의 산조 무네치카(三条宗近)와 돗토리의 야스쓰나(安綱)입니다. 헤이안시대 후기에는 도공들의 집단 거주 지역이 형성되었고, 가마쿠라시대에는 일본 전국에 도공이 분포하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작풍이 수립되었으며, 교토의 아와타구치 요시미쓰(粟田口吉光), 가마쿠라의 마사무네(正宗), 비젠 후쿠오카의 이치몬지 요시후사(一文字吉房), 스케자네(助真), 오사후네의 미쓰타다(光忠), 나가미쓰(長光) 등 명공이 등장했습니다.

무로마치시대 후기부터 날을 아래쪽으로 꽂는 다치 대신, 날을 위로해서 차는 칼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에도시대의 칼은 이전의 것과 구분해 '신도(新刀)'라고 불렸는데, 이러한 명칭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에도시대에는 전국의 성곽 주변에 살던 도공들이 보다 완만한 칼날과 화려한 무늬 등 참신한 작풍을 전개해나갔습니다.

도검의 칼자루와 칼집 등 외장에 사용된 장신구로는 날밑, 메누키(目貫, 칼자루에 지르는 쇠붙이), 고즈카(小柄, 칼집에 끼는 작은 칼) 등이 있습니다. 금이나 은과 동을 사용한 정교한 작품이 제작되었으며, 이는 여러 금속 공예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진:국보 다치

 
중요문화재 다채색 달 매화 그림 차 항아리
중요문화재 다채색 달 매화 그림 차 항아리
도자기
13실

일본의 도자는 중국과 한반도에서 전해진 기술과 디자인을 기반으로 일본의 독자적인 생활 양식과 미의식을 더하여 발전했습니다. 특히 아즈치 모모야마시대(1573~1603)에서 에도시대(1603~1868) 초에 걸쳐 다인茶人들의 요구에 따라 미노(美濃)와 이가(伊賀) 등 일본 각지의 가마에서 규범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도기가 제작되었습니다. 에도시대 초기에는 한반도에서 자기 기술이 전해져 규슈 비젠(肥前) 아리타(有田)에서 청화와 채색 도자기가 생산되었습니다. 이마리 항에서 수출되었기 때문에 이마리(伊万里) 도자기라고 불립니다. 이윽고 일본 특유의 우아한 양식이 완성되어 머나먼 유럽에서도 왕후 귀족들을 매료했습니다. 한편, 닌세이(仁清), 겐잔(乾山) 등 교토의 도공들은 국내외의 옛 자기를 연구하여 이에 독자성을 더했습니다. 에도시대 후기인 18세기 후반에는 일본 각지에 가마가 개설되었으며, 지방 문화를 반영한 다채로운 도자기가 생산되었습니다.

사진:중요문화재 다채색 달 매화 그림 차 항아리

 
에도 성 서쪽 구역 및 중심 구역 접견실의 장벽화 밑그림
에도 성 서쪽 구역 및 중심 구역 접견실의 장벽화 밑그림
역사의 기록
15실

도쿄국립박물관은 고문서와 기록, 평면도와 지도, 탁본, 판본, 사진과 모사 등 역사 자료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박물관의 설립 과정에서 미술 공예품뿐만 아니라 에도 막부가 보관하고 있던 고문서와 평면도, 동물과 식물, 광물까지 동서고금의 '박물'을 수집한 것과 관련있습니다. 그 후 동식물과 광물 등 자연과학계의 자료는 국립과학박물관에 이전되었지만, 다양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자 하는 태도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기부를 통해 더욱 알찬 컬렉션이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1943년 도쿠가와 무네요시 선생이 1만 점에 이르는 에도시대의 서적류를 기증해주셨으며, 이는 박물관의 중요한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역사 자료는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 교통, 경관 등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다양한 고문서와 평면도, 사진을 통해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에도 성 서쪽 구역 및 중심 구역 접견실의 장벽화 밑그림

 
아투시(나무껍질 옷)
아투시(나무껍질 옷)
아이누와 류큐
16실

일본 열도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북쪽의 아이누 문화와 남쪽의 류큐 문화를 들 수 있습니다.

아이누 문화는 13세기 이후 사할린, 지시마, 홋카이도, 도호쿠 북부 지방의 사람들이 수렵과 어로, 식물 채집과 교역을 통해 독자적으로 키워온 문화입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아이누 자료는 1875년 빈 만국박람회 사무국에서 넘겨받은 자료와 개인에게 기증받은 컬렉션으로 구성됩니다. 다양한 생활 용구와 의복, 무구와 제사 도구 등 방대한 양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류큐 왕국은 15세기 이후 남서제도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한반도, 동남아시아와 관계를 맺으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류큐 자료는 1884년 독일 정부로부터 의뢰를 받아 농상무성이 오키나와현에서 구입한 자료와 개인에게 기증받은 컬렉션으로 구성됩니다. 생활 용구뿐만 아니라 회화와 문서, 오래된 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열도의 북쪽에서 꽃핀 아이누 문화와 남쪽에서 꽃핀 류큐 문화의 다채롭고 깊은 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아투시(나무껍질 옷)

 
보존과 수리
보존과 수리
보존과 수리
17실

박물관에는 작품의 공개 활동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이를 통해 소중한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도록, 전통에 뿌리내린 경험과 최신 보존과학 성과를 활용하여 임상 의학에 비유되는 임상 보존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17실에서는 수리 전후의 문화재, 보존 또는 수리에 관한 도구, 장치, 재료를 통해 이러한 활동을 소개합니다.

 
말
말
근대 미술
18실

메이지 시기의 일본은 근대 문명국가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장인정신 세계와 서양 예술의 차이로 인해 갈등합니다. 서양의 예술 관념은 지금까지 일본인의 생활을 장식해 온 병풍과 후스마에, 도자나 금속 공예, 칠공예, 염직과 같은 공예를 '미술'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가들은 그들의 가치관과 기술이 어떻게 하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정부는 해외 박람회에 참여하고, 국가 주도의 전람회를 개최했으며, 미술 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된 작품은 서양과 일본 '미술'의 차이를 극복하거나, 혹은 일본의 독자성을 주장하면서 근대 국가와 미술 국가로서 일본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서양 근대 사상의 영향으로 미술 세계에서도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개인의 주장이나 사상이 가장 중요한 테마로 대두되었으며, 작가들은 다양한 소재와 작품을 통해 자기주장을 시도했습니다.

사진:말

 
“녹색 사자” 체험코너
“녹색 사자” 체험코너
“녹색 사자” 체험코너
19실

효케이관의 사자 동상을 마스코트로 한 교육 공간입니다. 전통 무늬 스탬프로 엽서를 만들 수 있는 '도하쿠 디자인', 작품의 제작 과정과 기법을 배울 수 있는 '도하쿠에서 ○○를 만들기까지', e국보를 활용한 '도하쿠에서 국보를 찾자', 3D 작품 화상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도하쿠를 움직이자' 등 5개의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습니다.